남편 두 차례 암수술, 농악에 심취하며 극복

영락없는 촌사람 박훈서(67)씨. 금산군 금성면 대암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씨는 고향을 떠나보지 않은 말 그대로 토박이다. 오롯이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그다. 마을 고령자들 중에서 이곳 대암리를 샅샅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박씨를 비롯한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 몇뿐이다.

무뚝뚝하고 우직스러운 박씨가 꽹매기(꽹과리)와 사랑에 빠진 것은 4년 전이다. 부인 최영례(66)씨가 금성면 자치센터 농악교실에 발을 디디면서부터다.

부인 최씨는 농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늦도록 농악패를 따라다니다 부모님에게 회초리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매료됐었다. 어깨너머로 조금씩 익혀왔지만 남들에게 내보이기엔 실력이 부끄러웠다.

때마침 금성면사무소 자치센터에 농악교실이 열린다니, 한달음에 달려가 첫 수강생으로 등록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워낙 사는 곳과 거리가 먼 자치센터이다 보니 오가는 길이 걱정스러웠다.

밤이슬을 맞으며 농악을 배운다는 말에 등 돌리던 남편을 겨우 설득해 운전기사(?)로 채용했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남편은 계약(?)대로 아내를 태우고 자치센터 농악교실을 오가야 했다. 한번 내려놓으면 2~3시간 걸리는 일이 다반사니 그 무료함을 달래기란 쉽지 않은 일. 별 생각 없이 농악교실 회원들의 연습장면만 바라보는 일이 반복됐다.

어느 날, 아내가 연습에 열중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 박씨는 깜짝 놀랐다. 덩더꿍 덩더꿍 가락에 내 몸이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도 이런 신명이 있었던 건가? 유독 꽹과리가 울려대는 카랑카랑한 울림이 깊숙하게 똬리를 틀었다. 그날부터 박씨의 일상에 변화가 시작됐다.

동네에서 그를 찾으려면 귀를 쫑긋 세우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새벽부터 시작해 잠들기까지 꽹과리를 손에서 놓지 않기 때문이다. 논을 가든 밭을 가든 몸의 한 부분인 듯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꽹과리다. 심지어 화장실과 이불 속도 예외는 아니다.

먼동이 트면 가장 먼저 뒷동산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토종닭장이 그 곳에 있어 먹이를 주려 들르던 곳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한적한 곳에서 꽹과리 삼매경을 즐길 수 있으니 그 기쁨이 더 크다.

고민이 생겼다. 본인에게 흥겨움이지만 남들에겐 소음으로 들릴 수 있으니 이웃에 폐가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꽹과리에 두터운 종이를 붙이는 것이었다. 가락의 흥취에 젖다보면 종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잊곤 한다.

지난해는 농사꾼으로서 참으로 못할 일을 했다. 부부가 함께 농악에 심취하다보니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애써 키운 도라지 밭과 황기 밭이 말 그대로 쑥대밭이 돼 버렸다. 잡초 밭으로 변해버려 수확할 엄두를 못 냈다. 낮엔 인삼밭에 신경 쓰고 밤엔 농악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제때에 풀을 매주지 못한 탓이다. 김매고 돌아서면 풀이 석자인 한 여름철이었으니 오죽하랴. 농사를 망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죠”라며 태평하다.

부부싸움도 농악으로 풀어낸다. 아무리 미운마음이 들어도 자치센터 농악연습을 다녀오면 감쪽같다. 농악은 장단과 가락에 따라 계속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운동이다 보니 건강도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7년 전에 대장암, 지난해 위암수술을 받은 남편 박씨는 꽹과리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했다고 믿는다. 꽹과리 장단에 집중하다 보면 병증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챈다. 꽹과리와 더불어 가락에 심취하는 순간순간이 박씨에게는 치유의 시간이다.

박씨는 올해에 개최된 금산인삼축제 농악경연대회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농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감복한 금산농악회원들이 격려와 감사를 표한 것이다.

자신감 덕분에 목표치를 올려 잡았다. 현재 맡고 있는 금성면 농악회 상쇠에서 한 단계 올려 금산군을 대표하는 ‘금산농악회’의 상쇠를 맡겠다는 도전을 새겼다.

금성면 농악회에서 장구를 맡고 있는 부인은 최근 일취월장의 기쁨을 맛봤다. 좌도농악 상모돌리기의 경지의 최고라 불리는 ‘나비상’을 완성한 것이다. 상모를 나비모양으로 돌리다 한 가운데서 멈추는 것으로 보통의 노력으로 얻기 힘든 경지다.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기에 기쁨이 남다르다.

박씨 부부의 희망은 재능기부다. 남들이 부러운 실력을 갖추게 되면 노인시설을 찾아 신명을 나누는 것이 꿈이다. 새로운 문화의 기류에 밀려 지금은 가까이에서 밀려난 농악. 함께 모여 하나를 이루는 농악의 깊은 의미를 깨달으며 삶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시골부부의 소박한 일상이 정겹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