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온도가 갑자기 많이 내려갔다. 지난주엔 16년 만에 ‘수능한파’가 고개를 들었단다. 어설프긴 했지만 우리지역은 첫눈도 다녀갔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흡사 한겨울 추위 못지않다. 그럼에도 청사 뒤뜰 은행나무는 아직 가을을 버텨주고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낡고 비좁은 청사에서 황홀함을 안겨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몇 일전 보험회사 직원이 내년도 달력을 전해 줬다. 달리는 시간은 사정을 해도 재깍재깍 소리만 낼 뿐 멈추지 않고 잘도 간다. 내 뜰의 황락을 눈여겨 살피면서 문득문득 쓸쓸해진다.

생각해보면 세상살이가 말로 뒤덮여 있다. 그러다보니 그 말로 탈이 나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상처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살수는 없다. 말로써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현대인으로선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과언무환(寡言無患)’ 은 지키기가 쉽지 않은 경구(警句)이다.

조직에서 자리가 올라갈수록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일일이 참견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학교경영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었다. ‘다언다패(多言多敗)’를 생각하며 말을 줄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꼭 그러지 않았어도 될 걸. 되도록 더 많이 들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처한 자리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되도록 듣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그것이 맘 같지 않다.

말이 많다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설득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말을 많이 함으로써 조직원과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생기고, 없던 감정의 골이 생길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오해하고 곡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그런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도덕경(道德經)에‘다언삭궁 불여수중(多言數窮 不如守中)’ 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니 가슴에 담아 두고 있음만 못하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시시콜콜 너무 말이 많으면 결국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老子의 생각을 담고 있다.

박재희 교수는 ‘고전으로 배우는 삶’에서 “말이 많은 건 그저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 못하다. 말없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리더의 꿈과 비전을 공유하게 만든다. 老子는 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는 ‘다언삭궁’을 말하면서 그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도를 지켜라.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더욱 소중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살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조금만 균형이 깨어져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하는 까닭이다. 균형이 맞지 않아 무너진 건물, 평형수가 모자라 가라앉은 거대한 여객선, 감정의 무게가 같지 않아 발생하는 갈등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도 그렇다. 치우침 없이 균형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며 창밖을 보니 만추의 어둠이 더 큰 어둠 속으로 터져 나간다. 아무리 좋은 말도 때를 맞추지 못하면 실언이나 망언이 된다. 별스럽지 않은 말이라도 때에 맞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말 한마디라도 때에 맞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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