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녹색의 향연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찬란한 산하를 바라보며 생명의 신비로움과 존귀함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 땅 어느 곳 하나 싱그럽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슬픔이나 고독이 끼어들 자리도 이미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이상스레 차분한 적멸 같은 것이 마음에 공(空)으로 번져오는 날이 있습니다.

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설렘도 울렁증도 없이 멍하니 보내는 날. 그런 날엔 일상적인 삶이 궤도를 이탈합니다. 거기엔 날씨도 단단히 한 몫 거듭니다. 황사 비가 내린다던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이상 기온이나 미세먼지로 가득 메워진 잿빛 하늘이 온 세상을 덮을 때면, 괜스레 우울하고 몸까지 무거워집니다. 일이고 뭐고 그냥 다 팽개치고 어디론가 달아나 숨어버리고 싶은 날입니다.

이런 엉거주춤한 날엔 인생의 무상함이 파도처럼 몰려듭니다. 무언가를 움켜잡으려 하는 모습이 한없이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왜 사느냐’,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물어온들 무슨 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는 일이 그저 부질없고 덧없어집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출근하던 어느 날인가. ‘공(空)’이란 노래를 반복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리는 세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공(空)’ 노랫말입니다.

구구절절 어쩜 그리도 우리네 인생을 잘 관조해 냈는지. 격한 공감을 넘어 지나 온 삶을 모두 부질없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따로 없더라구요. 나이 한 참 드신 분들 중에는 ‘그러는 너는 얼마나 살았는데’ 라며 비아냥 섞인 웃음을 던질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 작가 에라카 종은 소설을 쓰다가 어떻게 써야 할지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때면, 쓰던 노트를 과감하게 덮어버린다고 합니다. 몇 년이나 그냥 내버려둘 때도 있었다는 군요. 한참이 지난 후에, 덮어두었던 소설 몇 줄이 새로운 이야기를 숨겨둔 대단한 가능성으로 느껴지기도 했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가끔은 공(空)으로 번져오는 무념 무상한 시간을 내버려 둘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살다 보니 복잡하고 풀리지 않던 문제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덮어 두는 일도 있어야겠습니다. 굳이 다른 사람의 걸음을 따라가려 벅찰 필요 없고, 좀 느리더라도 제 걸음으로 한 걸음씩 천천히 내딛으며 사는 게 현명하다 싶습니다.

살아있음의 무상함을 죽비로 내리치는 날. 모든 것이 결국 공(空)일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새 걸음으로 내딛을 수 있는 한 줌의 힘을 얻습니다.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죠.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문이 열리며 내 몸이 한 송이 꽃 되어 활짝 부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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