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국민정신건강이 걱정되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사회상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해 발표한 2016년 정실질환실태역학조사 결과에서도 정신건강의 심각성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한명은 평생 정신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7개 질환의 평생유병률은 25.4%나 되고 있다. 특히 일 년 간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 국민은 11.9%인 470만 명으로 추산됐다.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정신질환 진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한 국민은 266만 명으로 2012년 232만 명 대비 14.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총 진료인원은 무려 1,227만 명에 달하고 이들이 병원 진료를 위해 사용한 금액은 13조 5,443억 원이었다. 이 데이터는 국민정신건강을 진단하는 주요 지표가 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자료이기 때문이다. 주요정신질환증세는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스팩트럼장애, 알코올사용장애, 니코틴사용장애, 자살 생각 및 시도 등이다.
여기에서 새삼스럽게 이를 또다시 제기하는 이유는 최근 국민정신건강이 걱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자살’이다. 아직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나흘간 잇따라 투신해 숨졌다. 지난 9일 오전 10시 45분쯤 서울대 신입생 A(19)씨가 20층 옥상에서, 지난 13일 오후 2시 10분쯤에는 A씨의 어머니와 여동생(17)이 19층 자신의 집에서 나란히 투신했다. 지난 9일에는 여학생 성추행 혐의로 미투운동의 타킷이 되었던 배우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숨진 뒤 나타난 조작된 음란카톡대화가 세인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87세를 아내 살해하려 한 98세 노인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투운동으로 문학계와 연극계, 영화계, 연예계, 검찰, 학회, 종교인, 교수, 정치인 등등 관련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되는 사회적 격변기를 맞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공황상태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미투운동과 관련 말을 잘못을 해도 논란의 화살을 피해나갈 수 없는 요즘이다. 특히 종편에서는 토론자들이 나서서 끊임없이 저작거리를 삼고 있다. SNS 상에서는 비난과 악플, 매도도 끊이질 않고 있다. 행위의 잘잘못을 떠나 사회적 불신과 국민정신건강에 악영향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일제강점기 공주 갑부로 이름을 날린 김갑순을 그린 TV드라마를 통하여 "모두 도둑놈이야"라는, 일본어로 "민나 도로보데스"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모두가 죄인처럼 되어버리는 작금의 폭로전에서 마치 자유로운 사람들이 없는 양 치부가 들어나고 있다. 행위를 볼라치면 참으로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히지만 갑질행위치고는 신종 갑질행태라 정상을 참작하기 어려울 지경이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국민들이 왜 격분하는지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그동안 벌어진 비정상적인 일들이 얼마나 만성화되고 타성이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피폐한 정신구조의 일단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징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국민들의 충격과 혼란은 더 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다 전직 대통령들이 교도소에 들어앉았거나 검찰을 들락거리며 부정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고 조사를 받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쓰레 하다. 지난 정권의 실세들이 대부분 각종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앉아 있으니 정권을 잡는 자들은 모조리 감옥행 티켓을 따놓은 듯하다. 역대 정권들의 비리와 부정부패는 늘 친인척을 중심으로 자행되고 측근들의 관리 잘못으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부정부패를 타도하고 청렴을 강조했지만 이는 매화타령에 불과했다. 사실 정치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국민적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다 강원랜드 채용비리가 드러난 226명을 전원 직권 면직키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억울하게 피해를 본 최종면접자 전원을 구제한다는 방침이지만 여기에 연루된 정치인을 비롯하여 부정청탁 관계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일벌백계로 다루어야 한다.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고 선의의 피해자를 낳게 한 자들을 낱낱이 밝혀내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TV화면에 간간이 들어나는 청탁자들의 이름이 심상치 않다. 연루된 국회의원 등 모두 밝혀 국민의 이름으로 단죄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날로 악화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들이 ‘화병(火病)’이 날 지경이다.
청년 실업은 한계치를 넘어서서 ‘졸업 곧 실업’인 나라가 되었으니 우리나라 청년들의 정신건강이 어디까지 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실업은 곧 고통인 것이다. 그러니 결혼적령기를 넘긴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곧 저 출산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미래의 추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여기에다 고령사회로 진입하여 청년들보다 노인들의 경제활동인구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20대 경제활동인구는 406만 3000명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60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는 전년의 395만 3000명에 비해 25만 7000명이 늘어 421만 명으로 집계됐다. 노인 경제활동인구가 청년을 추월한 것이다. 행복지수는 한국은 156개국 중 57위이다. 이미 '헬 조선'이라는 자조하고 있는 사회구조이다. 과도한 경쟁, 경제적 부담, 행복하지 않은 국가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인 1.05명까지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1명밖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세계 최저출산율에 세계 유례없는 ‘저출산세(稅)’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정상의 사회구조는 국민정신건강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개개인들은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곳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권리를 갖고 있다. 권력이 개입하여 채용비리를 일삼고 갑질 성폭력이 난무하고 ‘저출산고령사회’로 국가 미래 동력을 상실하고 기득권 정치세력들의 정치독점화가 심화되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을 동맥경화나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들의 멘탈이 붕괴되고 자살공화국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3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5.6명으로 OECD 평균인 12.1명의 2배 이상이다.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건강해진다는 평범한 말이 실감이 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를 지경이다. 모 교회에서는 늘 이런 말을 다짐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는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얼마나 자존감을 높인 말인지 감동적이다. 불교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말이 있다.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이는 없음'이란 뜻으로 '누구나 차별 없는 존귀함'을 일컫는다. 소중한 자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드높이고 이처럼 자존감을 높여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이래저래 걱정되는 작금의 대한민국의 사회상이 국민정신건강마저 위협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최근에는 정신건강을 바로잡는 ‘멘탈탁터’라는 전자기기까지 등장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기기를 한번 구입해서 정신건강을 체크해 보는 것도 궁여지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멘탈이 붕괴되어 그 정도로 걱정되는 국민정신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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