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싸워야 했던 소녀의 기억

영화 “한나를 위한 소나타”는 마르쿠스 로젠뮐러 감독의 영화로 독일에서는 2011년에 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영화는 2011년 예루살렘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2011년 버스터 국제 어린이 영화제 최우수상, 2011년 지포니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유럽영화상 등 개봉 된 직후 그 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휩쓴 작품이다.
혹시나 깐느나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작이 아니라고 해서 영화적 예술성이나 문학성 또는 흥행성 없는 역사를 고발하는 기록물일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영화이다.
아마도 깐느나 아카데미영화제 같은 곳에서는 혹시라도 국가적 이슈에 이념적 반발을 염려해서 살짝 외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래 이 영화의 원제는“Wunderkinder”이다. 덧붙여진 제목으로 ‘etwas auf Spiel setzen'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것은 ’무언가를 걸고 내기를 하다, 혹은 모험을 하다‘라는 뜻을 가진 관용어이다. 여기서 ’Spiel‘이라는 단어는 본래 영어의 ’play‘와 같지만 여기서는 게임이라는 의미와 함께 연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압축한 “한 번의 연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시놉시스의 요약이다. 유대인인 아브라샤와 라리사에게 나치친위대 대장은 ‘한 치 오차도 없는 연주’를 요구한다. 성공할 경우 몰살 명령이 떨어진 유대인 명단에서 이름을 빼주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양심이 있는 독일인은 반문한다. ‘지금 저 아이들에게 목숨을 걸고 연주를 하란 말이오?’ 이처럼 아이들에겐 목숨을 담보 잡힌 연주이지만 나치친위대 대장에겐 아이들의 목숨을 건 재미난 게임일 뿐이다. 가혹하게도 아이들에겐 이 제안을 거절할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 영화는 독일전범들의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를 기획 제작한 것은 바로 독일이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장면에 “희생당한 150만 유대인 아동을 추모하며” 라는 자막이 나온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희생당한 어린이들 그리고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휴우증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역사 앞에서 독일은 자신들의 잘못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시사했다. 정말 가슴 뭉클한 사연을 느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장소는 2차 대전 직전의 우크라이나이다. 유태인이자 음악 천재인 아브라샤와 라리사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인정받아 러시아를 순회하며 연주한다. 그리고 우연히 이들의 공연을 본 독일 소녀 한나는 그들의 연주에 매료되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그들과 함께 음악 공부를 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이즈음 아브라샤와 라리사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미국의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기회를 얻지만 전쟁으로 인해 좌절되고, 독일의 러시아 침공으로 인해 이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전쟁의 혼돈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음악으로 맺어진 소년, 소녀들은 서로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아름다운 우정을 지켜가지만, 이들의 상황은 점차 어려워지고 급기야 목숨을 건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독일인 한나의 아버지는 양조장을 운영하는 거부이다. 처음엔 딸 한나를 위해 돈으로 라리사와 아브라샤를 맺어주지만 나중엔 서로의 집안까지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가 된다. 세계 2차대전이 본격화 되면서 독일군과 적대 관계가된 러시아군으로부터 이들은 한나네 가족을 숨겨 보호해주고 곧바로 독일군의 침공으로 역전된 상황에서는 한나네 가족이 유태인인 라리사와 아브라샤의 가족들을 숨겨주며 도와준다. 그러던 중 유태인을 싫어하는 SS 친위대소령 베커 독일 장교로 부터 라리사는 연주전 협박을 당한다. 그리고 시작된 연주 결국 아무것도 모른채 연주에만 집중했던 아브라샤는 살고, 협박으로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실수한 라리사는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가스실로 끌려간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뜻밖에도 한나에게 아브라샤가 찾아온다. 노년이 된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아브라샤는 그때 그 연주 이 후 음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또한 아브라샤는 세계적인 유명 연주가가 된 한나를 늘 지켜보고 있었고 그 재회하던 날에 라리사가 죽기 전에 그들의 우정과 자연을 배경으로 완성해놓았던 한 유작품의 악보를 한나에게 전해준다. 영화의 제목이 된 것처럼 “한나를 위한 소나타” 였다. 이 영화를 감독한 마르쿠스 로젠뮐러(Markus Rosenmuller)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태어났고 현재 뮌헨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코에니크& 로젠뮐러 프로덕션 회사와 계열사인 미국의 마이셀프 & 아이의 공동 설립자이다. 약 120편 이상의 텔레비전 작품을 연출했고 영화로는<침묵의 계곡>(2011), <광산 청소부>(2010), <신의 충복> (2009), <의뢰인> (2004) 등이 있다. 이 작품에서 정말 감동적인 연기와 재능을 선보였던 세명의 아역배우들인 엘린 콜레브(아브라샤 역), 이모겐 버렐(라리사 역), 마틸다 애더믹(한나 역)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할 줄하는 천재 음악 소년,소녀라고 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목숨을 걸고 라리사와 아브리샤가 연주했던 Nikolai Rimsky-Korsakov – ‘왕벌의 비행’ 이 곡은 빠른 곡으로 유명한 곡인데 음악 천재인 이들이 무난히 소화해내었고 배경음악으로서 자주 들려주었던 Elin Kolev, Martin Stock - ‘Larissas Lied’ 등 이들이 연주했던 곡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잊혀지지않는 뭔가 슬프면서도 잔잔한 영화 속에서의 라리사, 아브라샤, 한나의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우정의 감성을 그대로 여운으로 남겨주고 있다. 또 라리사의 아버지역의 제던 버크하드, 어머니역의 나탈리아 아벨론. 한나아버지 맥스 라이히역을 소화해낸 카이 와이싱거, 어머니역의 캐서린 H. 플레밍등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준다. 감독인 로젠뮐러는 이 영화를 감상하는 모든 관객들에게 “사람이 삶을 위해 존재해야할 이념과 체제를 생각”하게 한다, “왜 한나가 우리의 적이 되었지?” “어른들이 바보라서 그래” 아이들에게는 인종도 이념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노는 친구일 뿐이었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들의 눈에는 폭탄이 터져 아수라장이 된 병원을 보며 ‘왜 이런 짓을 해요?’ 라고 반문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위해 존재할 이념과 체제가 오히려 사람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또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참상과 함께 전쟁에 저항하는 많은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걸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며 위험에 처한 사람을 자기 목숨까지 감내하며 탈출을 돕고 총을 드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평화를 위한 저항들이 있었기에 미쳐가는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일인들의 자성에 비해 아직도 자신들의 과오를 치부하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어설픈 만행을 비교하게 하는 영화가 바로 “한나를 위한 소나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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