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국정교과서인 국어책에 실려 유명한 청마 유치환의 시가 있다. 1936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깃발’이라는 시이다. 한번 보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이 시는 유한한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향하는 초월적, 이상적인 것에 대한 동경과 염원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참으로 주옥같은 시이다. 애수(哀愁)는 이념의 푯대와 그에 반하는 순정의 나부낌이라는 대립 속에서 회의하고 갈등하는 모순된 정서의 표현으로 풀이한다. 이 시의 화자(話者)는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를 세웠지만 끊임없이 나부끼는 순정에 흔들린다.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표현될 만큼 마음의 갈등은 고통스럽다.
이 시를 다시금 살펴보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갈등과 대립, 혼돈의 모순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을 볼라치면 국민들은 푯대에 매달려 나부끼는 깃발과 같이 보인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다. 초강수로 치닫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지난해 1월부터 시작해 1년 8개월째로 치닫고 있다. 백신접종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진정은커녕 지난 25일 2,155명, 28일 2,316명 등 오히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최고 4단계까지 격상돼 국민을 옥죄고 있다. 모순이다. 백신접종을 하면서도 수급불안정으로 국민을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군인들에게는 노마스크 실험까지 시행한다며 난리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반응형 위드 코로나 뜻인 위드 코로나는 ‘with Covid-19’를 말하고 지금처럼 확진자 발생을 억제하는 것보다 위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하는 방역 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일상생활로 서서히 복귀하는 방역전략이다. 1차 접종이 추석 전에 70%가 달성되고 2주가 지나면 완전접종이 되기 때문에 9월말이나 10초에 검토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코로나 종결이 아니라 함께 산다는 의미가 짙다. 한마디로 개인위생이 중요한 시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백신접종률이 100위권 밖에서 맴돌고 이제야 다소 오르긴 했지만 아직도 미흡한 상태에서 시기상조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 5인 이상 사적모임을 규제하면서 나온 모순된 논리적용이라는 것이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국민권익위원회 발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자 명단이 여당을 시작으로 이제 야당까지 발표되었다. 출당이니 제명이니 탈당이니 각종 후속조치들이 나왔으나 지금까지 슬그머니 요지부동으로 눌러앉아 있는 후안무치의 모습도 여전하다. 야당도 12명이 나왔다. 한 국회의원은 부친의 부동산 투기의혹에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연좌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쇼라느니 뭐니 하면서 아우성이다. 수사를 자원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코미디 중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는 국회의원 모두를 향해 던져야 하는 돌을 한 명의 의원에게 집중적으로 던지고 있으니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국민권익위가 제시하고 있는 모든 투기의혹 국회의원들이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들 모두를 조사해 진위를 명쾌하게 가려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영부영해서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다.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아야 한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 국민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전투구로 본질을 흐릴 문제가 아니다.
요즘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어오는 난민인 아프간 협력자들의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긴급 수송 작전을 통해 390명이 진천인재개발원에 수용됐다. 그런데 지난 8월 27일 오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아프가니스탄 특별입국자 초기 정착 지원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는 동안 법무부 직원이 뒤에서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모습을 두고 '인권침해가 아니냐!'며 난리가 아니다. 지금이 조선시대냐는 비난이 거세다. 동영상으로 보이는 당시 모습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이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 중에 착각이다. 비난의 깃발이 휘날리며 구석구석에서 아우성이다. 심지어 해외에서조차 아우성이다. 해외 지도자들이 혼자 우산을 받는 모습까지 소개되고 이를 비교대비하며 비난공세를 펼쳐지고 있다. 아마 이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공분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폭로되는 각종 문제들은 더욱 가관이다. 모 유력 대선후보의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고액 변호사 수임료 의혹이 대선 국면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청탁금지법 의혹 논란이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의 과거 상고심 변론 관련 사안이 이른바 ‘무료변론’, ‘공짜 수임료’ 논란에 휩싸여 있다. 당사자인 대선 유력 후보자도 김영란법 위반 의혹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과연 어떤 심경일지 유추가 가능하다. 그 진위가 분명히 가려져야 하는 이유는 불법행위여부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모 국회의원이 부친부동산 논란으로 연좌책임을 지고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농지법 위반의혹이다. 나아가 자신의 책임여부도 가려달라는 수사요청까지 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 쇼인지 아닌지는 수사를 통해 가려질 일이다. 마찬가지로 무료변론이건 공짜 수임료건 불법행위가 드러났다면 정정당당하게 수사를 통해 가려내 상응한 법적 책임을 져야한다. 이것이 공인이자 지도자의 길을 나선 사람들의 최우선 덕목이다. 이를 유야무야 넘기고 사안을 덮으려고 한다면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어리석음에 다름이 아니다. 서민들은 주차위반이나 신호위반 등 작은 도로교통법규만 어겨도 벌금을 물거나 과태료를 물고 있다. 심지어 벌점까지 주어진다. 지켜야할 법이 그 어떤 종류라고 예외는 없다.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정치권 등이 연루된 가짜수산업자 비리의혹도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드러난 모든 의혹마저 명쾌하게 소명이 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아우성은 소리가 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소리있는 아우성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국민들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소리없는 아우성을 질러왔다. 백신이 접종 중인 지금도 사회적 거리 4단계라는 황당한 현실에 처해 인원수까지 제한한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칠 데로 지쳤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초토화되고 있다. 곳곳에 상가는 텅텅 비어 ‘임대’라는 글자만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상가나 각종 점포마저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재난지원금을 준다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주는구나 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대출규제까지 겹치고 기준금리까지 인상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서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라 억장이 무너지며 하염없는 눈물을 짓고 있다. 감동이 전혀 없는 작금의 나라상황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많지만 국민들의 아우성을 환호성으로 바꿀 인물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상의 나라, 정상의 사회는 비단 코로나 사태의 진정만이 아니다. 행여 ‘위드 코로나’를 ‘위드 불법행위’로 착각해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유치환의 깃발이 대립과 모순, 갈등의 정서를 표현하는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한다면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매다는 단초를 지도자들이나 사회지도층은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는 행간의 뜻을 새겨야 한다. 국민을 비극의 아우성 속에 몰아넣는 허상의 인물은 정말 ‘아니올시다!’이다. 정상모리배(政商謀利輩)는 국민 앞에 나서지 말고 차라리 범부凡夫)로 살아야 한다. 작금의 혼탁한 상황을 지켜보면 정상모리배의 척결은 이제 국민의 몫이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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