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청 신경희 장학관

아직도 지난해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정쩡하기만 한데, 무술년 새해가 밝은지 일주일여가 지났습니다. 벽두부터 곳곳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들을 접하면서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니, 무술년 새해 출발부터 기적인 셈입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는 않은데, 어깨가 무겁고 더부룩합니다. 새해맞이 타종식을 시청하며 “보기 좋게 나이 들어가야지” “잘 늙어야지” 그런 다짐을 했습니다.

지난 연말에 ‘잘 늙은 집’을 보고 왔습니다. 우연히 모 방송사의 <화첩기행>을 시청하다가 알게 된 곳입니다. 현대 문명의 헛바람을 맞지 않고, 오랜 세월 곱게 늙어 온 절입니다.

큰 사찰도 아니고 화려한 곳도 아닌 안도현 시인이 숨겨 놓은 절, 완주 ‘화암사’가 그 곳입니다. 시인이 그랬습니다.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 늙은 절집’입니다.

차량이 오갈 수 있는 임도(林道)가 아닌 화암사로 향하는 길은 첩첩 산중 외롭고 고적했습니다. 어딘가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참나무 숲을 지나 폭 좁은 계곡들을 건너, 굽이굽이 오르니 수정처럼 투명한 계류(溪流)가 청아하게 속삭이며 흘렀습니다. 길은 곳곳마다 푸른 이끼를 쓴 기암들과 작은 폭포들이 어울려 노닐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들어갔을까. 높다란 철제 계단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몇 번을 꺾이고 휘어지며 길게 놓인 아슬아슬한 철 계단은 무려 147계단이나 되었습니다. 살짝 얼어있는 철제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다 보니 계단 양 옆으로 작은 그림과 시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거기, 안도현의 시(詩)도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중략-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중략- 「花巖寺, 내사랑」
힘겹게 오르니 ‘잘 늙은 절집’이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일주문이나 사천왕문도 없이 대뜸 절집이 나옵니다. 비림(碑林)이나 부도탑도 없습니다. ‘우화루(雨花樓)’ 비가 꽃처럼 떨어지는 다락루 라는 현판을 이마에 붙인 절집이 눈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투박하고 낡은 현판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습니다. 평생 분이라곤 발라보지 않은 수더분한 아낙네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생긴 그대로의 기둥들이 우직스럽게 늙은 절집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자 아무도 없으리라.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휘어진 버드나무도 그렇고, 푸른 이끼로 뒤덮은 바위도 피해 갈 순 없습니다. 화암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람이, 일 없이 물고기 꼬리를 그저 그냥 한번 툭 치고 가듯이 풍경을 흔들고 지나갔습니다. 늙는다는 건 결코 서글픈 일만은 아니라는 걸, 오래된 절집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삽상한 바람도 쉬어 가는지 풍경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건강하고 평온하게, 괜찮게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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