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요즘 정치권을 보면 조선시대의 사색당파(四色黨派)를 떠올리게 한다. 영어로 “History repeats itself.”란 말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인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대한민국이 마치 조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돌이켜 보건대 1575년 이조정랑 관직 인사를 둘러싼 대립으로 조선의 명운을 뒤흔들어놓은 사색당파의 시발점인 동인과 서인이 탄생했다. 정철 처분 문제로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당했다. 세자책봉 문제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1680년대에 서인이 남인에 대한 처분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고, 노론은 사도세자 문제로 시파와 벽파로 갈리는 등 파당 분화가 계속됐다. 사적인 감정으로 파당을 만들고 싸움질과 대립에만 몰입하다가 민족을 누란의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까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일본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임진왜란·병자호란이 벌어졌을 때 당쟁에 빠진 조선은 비극을 자초하고 만다. 여기에는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 축출, 처형, 반정, 역적모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의 잔인한 역사가 아로새겨 있다. 사색당파와 붕당정치의 비극적인 역사를 보게 된다. 조선시대, 이 뼈아픈 역사적인 사실은 반면교사로 오늘날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이제 5개월 정도 남겨놓고 있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을 야당대로 신당 출범이란 군불이 지펴지고 있다. 혁신위까지 출범시키며 청년 정치를 표방하는 여당은 여당대로 기득권 포기를 주창하며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기존 당권 세력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일부 세력들이 신당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암중모색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같은 당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립과 갈등이 상상을 초월한다. 막말이 오고 가고 제명을 운운하며 갈 데까지 간 모양새다. 소위 ‘너는 너 나는 나’식이다. 그러다 보니까 나오는 이야기가 기존 불만 세력들이 신당을 꾸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이나 당원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등장하는 이슈이자 화두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당권 세력과 비 당권 세력 간의 신경전이 엄청나다. 심지어 자당을 두고 질식할 정도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역시 관련 당사자들의 명단이 등장하며 탈당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심지어 불출마확인서까지 받고 있을 정도이니 현직 국회의원인 당사자들은 그야말로 목줄을 죄는 느낌 속에서 다가오는 총선을 향하고 있는 듯싶다. 사실 그만두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수긍할 정치인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그러다 보니까 찬밥신세가 된 이들 세력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 문제가 급부상하고 있다. 총선이 불과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과연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가 이른바 붕당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국민이 원하는 원하지 않든 그렇다. 권력을 탐하는 정치인들의 셈법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붕당정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늘 선거철에 나타난 정당들이 요란을 떨다가 대부분 실패하거나 소멸의 길을 걸어왔다. 이미 출현한 신당이 있지만 아직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새로운 신당이 출범하면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미지수다. 기존 정당들이 자신들의 지지층을 갉아먹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지만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정치적인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한명 한명이 국민을 대변하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지만 국회 정치를 보면 작당 논리만 난무한다. 반대하거나 몰아붙이기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는 늘 이런 모습만 보여왔다. 일방적인 법안처리와 탄핵이 남발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까 사실상 과거 충청권 자민련처럼 중간역할을 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거대 야당의 국회 장악이 과연 생산적인 국회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의 숙제로 남기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나약한 국회 정치의 모습으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허공 속에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대립과 갈등의 산실이 국회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늘 싸움판이다. 공통분모를 찾지 못하고 일방통행식이다. 이를 민주주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아니올시다이다. 당파 싸움에 국회의원들은 늘 콧잔등이 아물 날 없다는 비아냥을 듣는 이유다. 여야가 붕당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 어떤 정치판이 그려질지도 자못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려내는 오늘의 모습이 정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한다면 정치개혁은 필수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서 그렇다. 역사가 반복한다고 해도 과거 조선시대 사색당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 무모한 대립으로 비극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불행한 역사가 이를 말하고 있다. 붕당정치나 당쟁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정치였는지를 역사 속에서 경험하는 민족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상대방의 흠집만 보이고 장점은 전혀 보이질 않는 정치로 향하고 있다. 톱니바퀴가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조화롭지 못한 모습들이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온다. 민생을 강조하면서도 정치는 겉돌고 있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자 백성이다. 금세기의 잔악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전쟁은 얼마나 참담한 비극이 금세기에도 순식간에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전쟁이다. 우리 국민에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치인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선거철만 되면 신당 타령은 단골 메뉴가 되었다. 사실 붕당정치는 갈등의 산물이다. 사색당파와 같은 위험한 대립과 반목은 멈춰야 한다. 지금은 진부한 인물들의 붕당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인물 등장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정치가 바로 정치개혁의 시작이다. 새로운 인물을 찾아라. 그것이 청년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듬직한 인물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불법과 탈법, 그리고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물들의 등장은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상생과 화합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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